두려움과 분노의 차이
단지 생존이나 안전을 위해 하는 행동들은 모두 두려움에 기반한 것이다.
두려움 base의 행동이 아닌 분노 base의 행동이 필요하다.
<분노base>
내가 더 잘할 것 같은데?
이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닌 것 같은데?
뭐하는거야 지금?
웃긴건 두려움 베이스이던 분노 베이스이던 둘다 ‘필요함’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필요하니까 무조건 정당화되고 합리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 그래선 안된다.
두려움에 기반한 것들은 노예의 삶이다.
주인의 삶으로 살기 위해선 분노를 기반한 삶을 살아야한다.
분노라고해서 물건 깨부시고 주먹질날라가는 것들만 상상해선 안된다.
접시를 똑바로 놓는 것 또한 분노를 기반했다고 할 수 있다. 열기를 통해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적극성이 필요하며 행동에 나라는 주체가 등장해야한다.
그 분노 들 중에서 또다시 올바른 것을 골라야하는 상황이다. 두려움을 느낄 여유가 없다.
그저 필요하다고 무언가를 해서는 안된다.
그 무엇이 안필요하겠나.
욕심적으로 가지기 위한 개인적 필요가 아니라, 사회의 필요성을 느껴야한다.
그 사회적 필요성에 의한 것은 뭔가 적극적이다.
뭔가가 제대로 되어야만한다고 생각이 들고 새로운 행동이 포함되어있다.
개인적 필요는 돈으로 사면 된다. 일시적일 뿐이다.
내가 직업으로 하거나 주활동으로 삼아야하는 것은 사회적 필요다.
전쟁에 반대하거나, 단점을 극복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긍정적인 느낌으로 지금 상태에서 내가 사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좋아하는 것만 하는게 아니라,
지금은 싫어하는 일이더라도 내가 남들보다 더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적극적이며 당돌한 태도로 살아야한다.
나에게 문제는 없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어야한다. 오직 사회에만 문제가 있으며 내가 그곳에 기여할 일만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하다보면 그저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뿐이다.